▲© 영양사신문

“The skeleton in the hospital closet” 이는 1974년 “Nutrition Today” 에 실린 논문 제목이다. 제목 그대로 병원에는 남들에게 들킬까 쉬쉬하고 있는 부끄러운 비밀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입원 환자의 영양불량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입원 후 영양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사망하게 된 환자 등의 사례를 들어 병원에서의 영양불량이 의사 혹은 의료제도의 무관심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고 밝히고, 약간의 관심으로도 큰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 후 입원 환자의 영양불량에 대한 연구는 다각도로 이루어져왔고, 병원에서의 영양불량은 환자 치료에 있어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환자의 영양불량은 기아에 의한 영양불량과는 다르다. 기아에 의한 영양불량이 주로 섭취 부족에 의한 것이라면, 질병과 관련된 영양불량은 섭취 부족, 질병으로 인한 영양소 요구량 증가, 소화·흡수불량 및 체내 염증(inflammation)반응 등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결과물이다. 영양상태가 나빠지면 신체 기능이 저하되고 상처회복도 지연되며 결국 장기부전에 빠져 사망하게 된다. 영양상태가 나쁜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욕창 발생이 5배가량 높다는 연구 보고도 있었다. 170명의 환아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중환자실 입실 여부, 중심정맥 카테터 사용과 더불어 영양불량이 병원내 혈류감염(blood stream infection)으로 인한 사망의 주요한 예측 변수임이 밝혀졌다. 미국에서 보고한 영양의 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환자의 섭취량이 적을수록 사망 위험이 더 증가했다. 영양불량이 환자 안전과 의학적 치료영역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들이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주체는 의사다. 그렇다고 의사 혼자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아니다. 병원은 영양을 비롯한 간호, 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의사와 협력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시스템이 모여 있는 곳이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이들 시스템이 저절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영양상태가 나쁜 환자의 임상예후가 나쁘다는 것을 현장 의료진들 대부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환자 영양상태가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하고, 병원에서 누군가의 관심은 시간이고 자원이다. 영양전문가인 영양사가 영양불량 위험도를 의사에게 고지하고 어떤 중재가 필요한지 자문해 주어야 담당 의사가 환자의 의학적 상태를 고려하여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초영양관리다.

기초영양관리는 초기영양평가를 실시한 후 영양불량 고위험군 환자에 대한 영양불량관리계획을 수립하여 의사에게 알리는 행위이다. 국내 의료기관인증 및 국제병원인증 평가항목에서도 이 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지난 3월 6일 국회에서 열렸던 “의료기관 기초영양관리 필요성 및 수가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103개 의료기관 중 83% 병원에서 기초영양관리를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양불량위험환자 관리 수행율이 90% 이상이 되는 병원은 64%에 불과했다. 영양불량위험환자관리 수행의 장애요인으로 인력부족, 의료기관의 무관심, 수가 부재가 전체 응답의 81%를 차지했다. 즉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알고는 있으나 자원의 지원은 부족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보건의료 비용 및 의료이용 프로젝트(Healthcare Cost and Utilization Project)”자료를 이용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입원 24시간 내에 기초영양관리를 실시하고 그에 따른 심층 영양관리를 실시한 결과 재원일수 및 재입원율 감소를 통해 의료비를 26.7% 절감하는 효과가 있었다. 수십조에 이르는 국내 입원 요양급여 비용을 생각해 본다면 아무리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이는 분명 비용효과가 있는 행위이다. 따라서 기초영양관리료를 요양급여화하여 행위에 대한 수가를 보장하는 것이 결코 보험재정에 손실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직 관련 국내 연구 자료가 거의 없기에 보건당국을 설득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환자 질병에 더해진 영양불량은 “보이지 않는 손”과 같아 때론 임상예후 악화가 질병 자체 요인 때문인지 영양불량 때문인지 명확하게 구별하기 어렵다. 그래서 병원의 부끄러운 비밀이 드러난 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입원 환자의 영양불량이 여전히 이슈화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환자의 영양불량관리는 더 이상 “영양”만의 문제는 아니다. 환자 안전과 치료의 질향상과 관련된 문제이며, 여기에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초영양관리는 입원환자의 영양불량을 해결하는 시스템이다. 기초영양관리가 체계적으로 자리잡으면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의료비 절감까지 이룰 수 있다. 보건당국은 영양사의 전문가 역량을 활용하여 입원환자의 안전과 치료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안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영양사들도 우리의 역량을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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